‘가짜 나’를 버리고 ‘진짜 나’를 찾다

과학동아
2017-10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한국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과 정신적 습관 등에 대해 조사한 결과 약 90%가 대인관계에서 인지적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할 때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에만 의존하기 쉬워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람마다 보는 세상이 각기 다르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뇌과학으로 인지적 오류 설명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이런 특성을 꿰뚫어 보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실상(實相)이 아니다. 우리 주관으로 만들어진 세계다”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외부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과 이성에 따라 인식한다는 뜻이다.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주관으로 형성된 세계는 진짜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쇼펜하우어는 그 방증으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이 이를 곧바로 수용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들었다.

이런 사고 체계의 변화는 과학 이론의 발전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령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가 공중에 뜰 수 있다는 발상이 처음에는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양력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과학철학자인 토마스 쿤은 고정관념 때문에 결코 바꾸기 어려운 이런 사고의 전환을 ‘패러다임(paradigm) 전환’이라고 불렀다.

서양 주류 철학의 맥을 이은 20세기 철학자이자 공학박사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자체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고 보는 등 언어에 집중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언어를 정확히 쓰기 위해 노력했다.

앤디 클라크 영국 에든버러대 철학과 교수는 사람의 뇌가 인식하는 현상은 실제와 차이가 있으며, 뇌는 끊임없이 이런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뇌과학적인 시각으로 인간의 인식과 실제의 차이를 설명했다(doi:10.1017/S0140525X12000477).

하지만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통찰하려는 철학자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고수하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고 세상이 마냥 평화롭지만은 못한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짜 나’와 ‘진짜 세상’을 알 수 있을까? 자기의 마음 세계의 ‘사진’인 가짜를 없애면 된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렸지만 마치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처럼 나를 지배하며 생각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각자 살아온 과거의 삶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며 그것이 옳다고 인식한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2016년 ‘소아간호학저널(Journal of Pediatric Nursing)’에 명상의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국내 초등학생 42명에게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빼기 명상’을 체험하게 한 뒤 침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측정한 결과 사회적인 불안, 공격성, 스트레스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doi:10.1016/j.pedn.2015.12.001).

명상을 통해 어릴 때부터 사진으로 찍혀진 본인의 삶을 돌아볼 때 자신을 정확히 알게 되고, 세상을 인식하는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 스트레스, 번뇌, 고통의 원인이 허상 때문이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철학이 질문을 던지는 인간 본질에 대한 해답은 생각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리라.

이덕주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거쳐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미국 헬리콥터학회 부회장, 한국 드론산업진흥협회 부회장이며 아시아·호주 헬리콥터 포럼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지금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인성본성탐구 및 인성본성회복’ 등 인성교육 강좌를 KAIST에서 열었고, 작년부터 전인교육학회 회장, 미래 교육 소사이어티 창립멤버로 활동 중이다.
djlee@kaist.edu

출처: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710N048

 

*해당 기사는 저자의 동의 하에 개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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