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 50대에 ‘마음 찾은’ 세 남자 이야기

주간조선 1794호

밀착취재 – 50대에 ‘마음 찾은’ 세 남자 이야기 “마음을 버리니 마음이 보였다”

50대 남자들이 마음을 찾아 나서면 무슨 일이 생길까. 문홍순(56) 신한은행 상근 감사위원, 이덕주(50) 과학기술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정기언(50) 교육부 차관보. 이들 3인은 시기는 다르지만 각자 인생의 정점(頂點)에서 마음을 찾아 나서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나이로 보나, 경륜으로 보나 우리 사회의 중견인 이들 3인이 마음을 찾아 나선 데에는 각박하고 치열한 생존경쟁, 그에 따른 ‘인생의 무게’가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여느 50대에서 볼 수 없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삶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듯 보인다.

비결이 무엇일까. 이들은 마음을 갈고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아(自我)를 찾는 특별한 수련을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식자(識者)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마음수련’이 그것이다. 1996년 우명 선생에 의해 개발된 이 수련법은 현재 사단법인 의식개혁운동중앙회 부설 마음수련교육원(본원 계룡산)을 통해 보급되고 있다. 이들 3인 모두 이 수련원에서 마음수련을 했다.

돌연한 사직에 억측성 루머 나돌기도

2001년 5월 말 금융감독원 비은행검사국장이던 문홍순 감사위원이 사표를 던졌을 때 주위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에서 27년 간 ‘잘 나가는’ 공직생활을 하던 그의 돌연한 사직에 억측성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그는 가야산 마음수련교육원으로 직행, 그곳에서 9개월 간 머물며 마음수련을 했다.

“그냥 쉬고 싶었습니다. IMF 이후 투신권 정리다, 카드사 정리다 해서 피로가 누적됐습니다. 아울러 평소 내가 품어왔던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하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도 않고 홀연히 사표를 냈습니다.”

원래 문 위원은 2주 간만 마음수련교육원에 머물 생각이었다. 그러나 퇴직금도 전 직장에 맡겨놓은 채 시작된 수련기간은 훌쩍 3개월을 넘겼다. 잠시 귀가한 그는 아내와 함께 다시 그곳을 찾아 모두 9개월 간 마음수련을 했다. 나중에는 수련생이 아닌 강사 신분으로 다른 사람들의 수련을 돕기도 했다.

이 교육원에서 행하는 마음수련은 기본적으로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수련과정은 모두 5단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계룡산 본원에 입소할 경우 1ㆍ2단계는 각 1주, 3단계는 2~3주, 4단계는 4~6주가 소요된다.

초보자의 경우 대개 편히 앉은 상태에서 강사의 지도에 따라 수련실 벽에 붙여 놓은 지름 1㎝ 정도의 검은 점을 응시하거나 눈을 감은 채 마음을 비우는 훈련부터 시작한다. 지구를 상징하는 까만 점을 통해 영혼이 몸과 지구에서 이탈, 우주를 유영(游泳)하면서 과거 기억에 달라붙어 있는 감정의 응어리와 불합리한 관념들을 떨쳐내는 식이다. 물론 단계가 높아지면 수련법도 달라진다.

“외면적으로 보면 순탄하게 이어지던 내 인생이 갑자기 끊어지는 단절의 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상만물 일체와 내가 하나라는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비로소 오랜 마음의 방황을 끝내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2002년 2월 신한은행 상근 감사위원으로 돌아온 그는 생활의 변화를 실감했다. 그는 “일이 많아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바쁜 와중에도 마음이 항상 여유롭다. 자연히 일의 능률이 오르고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감정의 기복이 많던 이전과 달리 항상 편안한 마음이어서 부부관계 등 일체의 대인관계가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ㆍ후배들로부터 “얼굴이 아주 부드럽게 바뀌었다” “이전과 달리 대하기에 부담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의 부인(55)은 더 놀라운 경험을 했다. 15년 이상 앓았던 고질(痼疾)을 고쳤다고 한다. 동네 약국을 하던 그의 부인은 18년 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돼서야 소생했다. 이후 가슴이 답답하다거나 소화가 안 되고 체하는 등의 증상에 시달렸으며 5년 간은 설사가 멈추지 않아 심한 고생을 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도 병명을 밝히지 못했다. 그런데 2개월 간 마음수련을 하자 기적처럼 그런 증상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병은 마음에서 온다”는 말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문 위원은 1년에 3~5회 금융연수원에서 은행 지점장이나 부서장들을 대상으로 마음수련에 대한 강의를 한다. 이미 아들(28)도 마음수련 공부를 시켰다. 이것이 아들의 인생살이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마음수련으로 또 하나 얻은 것은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나만 잘 되기를 바라고 내 가족만 더 잘 살기를 바라는 너무도 이기적이었던 지난 삶이 부끄럽기만 했다”고 했다. 지금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눈앞의 이해관계를 떠나 보다 크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판단을 하니 모든 일 처리를 더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수련 결과를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어린시절 기억 회상…욕심 버려
비행기와 우주선을 연구하는 과학자인 이덕주 교수는 이상하게도 비행기 타기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1993년부터 폐소(閉所)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만 타면 비행기 내부가 너무 좁아 보여 안절부절못하고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이었다. 이후 정신과 약도 먹어봤지만 쉽게 낫지 않았다. 하지만 직업상 1년에 네 번은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그때마다 초주검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마음수련을 시작한 지 2~3일 만에 폐소공포증이 싹 없어졌습니다. 나 자신을 관조(觀照)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폐소공포증의 근원을 알게 된 것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2명과 함께 장난 삼아 친구집의 시멘트로 만든 개집에 들어갔다가 그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장시간 갇혀버린 것입니다. 결국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때의 공포가 지금껏 내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2001년 여름방학을 맞아 이 교수는 15년 만에 1주일 간 휴가를 내 가야산 교육원을 찾았다. 교수는 항상 방학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이 교수는 방학 중에도 연구에 몰두하느라 휴가 한 번 가보지 못했다. 그런 그가 가야산을 찾은 것은 머리 속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다. 수영, 등산 등으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했지만 얽히고설킨 두뇌를 정리하기는 힘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 내 생활이 좀 복잡했습니다. 가업으로 중소 건설업체를 물려받았는데 IMF 전후로 경영상태가 좋지 않았고 결국 부도가 났습니다. 경영자가 따로 있었지만 나는 오너로서 회사 일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어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초인적인 이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부도로 거액의 재산손실을 봤고 가정적으로 불행을 겪었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힘든 이중생활을 했을까.’ 이 교수는 어린 시절의 기억 회상ㆍ분석을 통해 그 이유가 더 부유했던 동네친구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당시 자신도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더 부유함’에 대한 욕심이 가난한 집 아이들보다 훨씬 강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욕심을 버리니 마음의 평화가 왔다. 학교로 돌아온 후 ‘정부의 큰 프로젝트를 내가 맡아야지’ 하는 욕심을 버리니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하게 되었다. 사심(私心) 없이 살기 시작하자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게 되었고 가정ㆍ가족에도 화목이 찾아왔다. 강의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강의를 하고 나면 기운이 확 빠졌습니다. 게다가 학생들도 썩 잘 알아듣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수련 후 학생들의 입장에서 강의를 하게 되니 강의 후에도 힘이 빠지지 않습니다. 내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도 한결 좋아졌습니다.”

이후 이 교수는 1주일에 2~3회 대전 지역에서 마음수련을 계속하고 있다. 깨달음으로 어느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2002년 겨울방학 때에는 2주 간 계룡산 본원에서 정진(精進)하기도 했다. 구슬땀을 흘리며 밭일을 하면서 하는 영농(營農)수련도 마쳤다.

이 교수는 마음수련을 통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내것을 주었다는 생각도 없이 베푼다)’의 진리를 절감한다고 했다.


‘참회의 눈물’ 30분 이상 지속되기도

정기언 차관보는 청와대 교육비서관 시절이던 2002년 7월 여름휴가를 이용해 7일 간 계룡산 마음수련교육원에 다녀왔다. 그는 25년 공직생활 동안 어디서나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완벽주의적인 성격,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으로 항상 긴장된 생활의 연속이었다.

“2002년 2월 직업공무원으로서는 최고위직인 1급(관리관)으로 승진한 이후 내 공직생활과 인생을 되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공직생활을 어떻게 명예롭게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럴 즈음 친한 사람 2명이 세상을 떠난 일을 겪은 것도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음수련으로 인한 변화는 먼저 기공(氣功)현상으로 나타났다. 정 차관보가 교육원에서 1단계 수련을 하던 어느 날 온몸에 기가 흐르는 느낌과 함께 30분 간 손발이 떨리는 경험을 했다. 이후 20여년 간 그를 괴롭혔던 어깨결림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는 승진경쟁 스트레스 등으로 항상 어깨가 굳어 있었지만 침을 맞고 마사지를 받아도 낫지 않았다고 한다. 만성 두통, 비염으로부터도 해방됐다.

“그런 다음날 내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 절절하게 참회가 되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치솟더군요. 30분 이상 울었습니다. 그렇게 울어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슴이 시원하게 뚫렸어요.”

이후 그는 일과를 마치면 집 인근 수련원을 찾는다. 작년 8월에는 다시 계룡산을 찾아 4일 간 영농수련을 거쳤다. 승용차 대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그는 “전동차 안에서도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면 눈앞에 무한대 우주가 펼쳐진다”고 말했다. 사무실에서도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이제 그에게서 완벽주의와 무의식적인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이전에는 중요한 회의나 보고를 할 때면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사라졌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니까 결과도 더 좋게 나온다”고 했다. 부하 직원들이 보고서를 가져 와도 결점부터 보여 야단을 많이 쳤지만 마음을 열고 나니 그럴 일이 거의 없어 부하와의 관계가 한층 좋아졌다. 그리고 경쟁자의 나쁜 점은 안 보고 좋은 점만 보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진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말했다.

◈ 마음수련이란

기억과 함께 감정·관념을 버린다

1996년 우명 선생에 의해 창안된 이 수련법은 일종의 집중적인 정신분석 방법으로 종교와는 무관하다. 몸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기 수련과도 달라 마음의 영역에서 마음의 문제를 풀어간다. 참선은 화두(話頭)를 정해놓고 그것에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무아지경과 깨달음에 이르는 반면 이 수련법은 삶의 기억에 달라붙어 있는 감정과 관념을 버린다는 점에서 참선과도 성격을 달리한다.

마음수련교육원(www.maum.org)은 1997년 가야산에서 고시원을 빌려 대중적인 수련을 진행하다 수련생이 늘어나면서 2001년 9월 현재의 계룡산 수련원(041-733-8254)으로 이전했다. 계룡산 수련원 외에 서울과 지방의 지역 수련원, 미국ㆍ일본 등지의 해외 수련원 60여곳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10만여명이 수련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기 주간조선 차장대우(ck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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