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요즘, 이제야 사람답게 삽니다

조재숙 / 우체국 근무

4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늘 혼자였다. 아버지는 일곱 살 때 돌아가셨고 엄마는 어린 자식들 걱정에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다. 자식들 다니는 길이라도 닦아준다며 아픈 어깨 주무르며 동구 밖까지 쓸고 다니던 엄마. 밤마다 모시를 삼으며 남편 잃은 설움에 눈물 콧물 삼키시던 엄마.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몰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면서 성장했다. 가족이 있어도 내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었다.

7남매 맏며느리,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나이가 들어 시집갈 때가 되자 7남매 맏며느리 자리로 혼담이 들어왔다. 큰오빠는 7남매 맏며느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좋았다. 시부모님이 젊으시니, 친정 부모님한테 못 받은 사랑도 받고 시누이와 시동생들한테는 내 친동생처럼 잘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결혼을 했고 시부모님 뜻에 맞추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난 시어머니한테는 항상 부족한 며느리였다.

결혼생활 20년쯤 되던 해 하늘 같은 버팀목이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몸이 불편하신 시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모셔왔지만, 남편 잃은 허전한 마음에 힘들어하셨고, 아들 며느리 사는 모습 하나하나 다 못마땅해하셨다.
어느 날부터는 “나는 열여섯에 없는 집에 시집와 칠남매 낳아 키워 뼛골 빠지게 가르쳐놨더니 며느리들만 좋은 일 시켰다” “착한 우리 아들 만나 걱정할 게 뭐가 있느냐, 호강에 겨워 힘들어한다”고 호령을 하시며 밤낮없이 살아온 삶이 억울하다고 화풀이를 하셨다.

‘사는 게 전쟁’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시동생이 마음수련 권유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나중엔 괴로웠다. 당장에 닥친 현실도 급했다. 아들과 딸의 대학 등록금, 용돈, 책값, 하숙비를 마련해야 했고, 생활비가 떨어져서 굶고 있다는 아들 말에 남편한테 사업을 권유해 시작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시어머니의 추궁은 더욱 심해졌다. 시어머니는 여자가 설쳐서 집안이 안된다며 모든 책임을 전가했고, 남편 역시 사업 실패를 내 탓으로 돌렸다. 사는 게 전쟁이었다.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갔고, 남편도 싫었다. 뒤늦게 역시 맏며느리 노릇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다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쓰러졌다. 뇌경색이었다. ‘이것이 죽는 것이구나’ 싶었는데, 그 순간 정신없이 사는 나에게 “형수님, 마음수련하세요. 안 그러면 진짜 죽어요!” 하던 시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다른 집과 비교하며 신세 타령하던 나, 수없이 참회해

수련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알았다. 일을 하면서도 인정받고 싶고 착하다는 말을 듣던 나였다. 살기 바쁘다고 시어머니의 시집살이 얘기를 한 번도 고분고분 들은 적이 없었다. 살갑지 않은 며느리가 좋을 리 없었을 시어머니.

수련하면서 수없이 참회를 했다. 어머니가 이야기를 할 때면 다른 시어머니들하고 비교하면서 신세 타령하기 바빴던 나를 계속해서 버려나갔다. 어머니 입장에서 보니 못된 며느리였다. 큰아들과 결혼하고, 제사도 지내왔으니 며느리로서는 도와드린다고 한 것이 어머니 입장에선 빼앗긴 셈이었다. 요즘은 수많은 사연을 가슴에 묻고 계신 것 같아 가끔은 직접 여쭈어 보곤 한다.

어머니 얼굴을 보면 세상의 풍파가 머물다간 흔적이 느껴져 안타깝다. 지금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건 다 해드리고 싶다. 호박이나 부침개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음식을 하게 되고, 평소에 못 입으셨던 옷도 사드리게 된다. 시어머니도 너를 많이 힘들게 했다 하시면서, ‘너밖에 없다’며 많이 미안해하신다. 요즘은 어머니도 마음을 비우고 싶다고 하신다.

이게 사람답게 사는 거구나, 살맛나는 요즘

아들, 며느리가 수련을 한 후 어머니를 대하는 모습이 책임감이 아닌 진심인 것을 아시고는, 얼른 기운을 차려 마음을 비워 행복하게 살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나와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이틀이 멀다 하고 싸우고, 툭하면 더는 못살겠다며 이혼 서류 준비하고, 저 사람만 안 만났더라도 이 모양 이 꼴은 아닐 텐데 하며 신세 한탄을 했던 우리 부부.

마음수련을 한 후 너무나 좋아서 남편에게 권유했더니, 수련한 지 2주 만에 집에 와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인 줄 정말 몰랐어. 다시는 내가 당신 힘들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라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감사한 존재임을 알았다. 이제야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마음수련 덕분에 살맛 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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