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기분, 처음 느끼는 행복

강민주 / 모스크바 거주

이제 갓 스무 살, 하지만 나는 엄청나게 지쳐 있었다. IMF 위기 때 집이 부도가 나며 중학교 때부터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내가 아무리 바동거려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세상 앞에 나는 너무 작은 존재였고, 희망이라는 것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대학, 아르바이트, 또 홀로 서울생활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불안감, 외로움, 힘든 마음 벗어나고 싶어 호주행 선택

이런 모습을 들키기 싫어 겉으로는 더욱 밝은 척 행동을 했다. 하지만 혼자가 되면 나는 무척 지쳤다. 반복되는 감정 기복과 불면증, 외로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되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1학년을 마치자마자 호주로 떠났다. 워킹홀리데이비자를 받아 3개월간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저녁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바다와 사막으로 미친 듯이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라도 하면 무언가 달라질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나는 내 인생을 뒤바꿔버린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그분은 내가 청소를 해주는 대가로 다락방에서 무료로 지내고 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숙을 하고 계셨다. 그곳 미대 교환교수로 와 계신 한선주 교수님, 독신이셨던 그분은 그냥 ‘엄마’라 부르라며 친근하게 대해주셨고, 나는 자연스레 살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교수님은 한국 음식도 해주시고,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셨다. 마음 둘 곳 없었던 내게 그 멀리 타국에서 의지할 곳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7개월 정도 교수님과 함께했고,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에 복학해 당시 광주에 계시던 교수님을 뵈러 갔을 때였다. 교수님은 고향 온 자식처럼 온갖 것을 챙겨주었다.

같이 여행도 다니고, 전시회도 데리고 다니는 교수님을 보면서 “저렇게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게 되지 않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호주에 다녀와 잠잠했던 마음은 다시 괴롭기 시작했다. 혼자 있거나 작업을 할 때가 되면 갑자기 우울해지면서 안정을 찾지 못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 아닌 진짜 내 행복을 찾다

그 당시 잠들기 전에 했던 기도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죽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제자가 하고 있다는 마음수련을 소개해 주셨고 마음을 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희망이었다.

취업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수련부터 하겠다는 결정에, 모두 걱정했지만 교수님은 달랐다. “마음수련부터 끝내라, 취업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수련비까지 대주셨다. 나중에 꼭 갚겠다고 했을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이 돈은 나중에 내가 아니라 다른,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갚으면 돼. 아무 생각 말고 우선 마음부터 다스리고 생각하자. 먼저 네 스스로가 행복해야지.” 교수님은 남들이 볼 때 행복해 보이는 자리가 아닌, 진정한 나의 행복을 위해 그렇듯 도와주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수련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기억, 부모님에 대한 원망, 나는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느낀 불안함…. 그렇게 하나하나 버렸다. 남보다 잘살고 싶었지만 그런 조건이 되지 않아 원망하고 나를 포장했던 마음들을 버리며 깨달았다. 나는 한번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 주변을, 세상을, 단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었구나, 참으로 나 자신을 만나본 적이 없었구나….

그렇게 나를 가리던 마음의 때를 닦아내며 나는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했다. 너무나 순수하고 맑고 아름다운 나, 그리고 세상.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나를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감사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나무도 하늘도 감사했다.

나는 바로 교수님께 편지를 썼다. “마음수련을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는 저를 낳아줬지만 교수님은 저를 정신적으로 성장시켜준 분입니다.” 나는 지금 모스크바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주신 교수님 덕분에 나는 지금 새로운 세상에서, 진짜로 숨을 쉬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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