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화와 함께 버려지다

엄준용 / 택시 기사

짜증과 화를 비워버린 택시 운전기사

은행원으로 살아왔던 엄준용씨. 명예퇴직 후, 사업을 하다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택시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는 16시간의 운전, 가지각색의 승객들에 치이며 왜 모두가 힘든 직업이라고 하는지 절절하게 느끼던 중 마음수련을 만났다고 한다. 이제 말 그대로 생활 속에서 늘 수련을 한다는 그는, 황당한 손님, 꽉 막히는 도로 때문에 일어나는 화조차 그때그때 버리며,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전한다.

돈과 직결되는 택시기사의 5분, 10분, 하루 종일 화나고 짜증 나

처음엔 16시간 꼬박 운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늘 짜증과 화로 바람 잘 날이 없었고, 항상 마음이 쫓기는 것 같았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회사에 사납금을 낼 수 있으니 택시기사에게 5분, 10분은 돈과 직접 연결된다. 30분 이상 차가 막히는 날은 그야말로 공치는 날이다. 그럴 땐 부지런히 승객을 태워 하루 일당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차가 막히거나, 신호 대기가 길어지면 짜증이 밀려왔다.

게다가 도로에서 일어나는 끼어들기, 난폭 운전, 운전자끼리의 시비 등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 힘든 건 승객이었다. 타자마자 다짜고짜 욕부터 하거나, 불이익을 당한 울분을 토해내거나, 술에 만취해서 갑자기 목이나 어깨, 머리를 잡아끄는 승객까지, 이번에는 과연 어떤 승객이 탈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의사소통도 어려웠다. 승객에게 조언했다가 오히려 화를 자초하기도 했고, 이번엔 맞장구를 쳐줘야지 했다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네네’ 한다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무시한다고 화를 내는 승객도 있었다.

꾹 참았던 화 버리게 해주는 마음수련, 일상에서의 큰 버팀목

정말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했다. 속이 두근두근거리면서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승객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승객이 내리면 차를 세워두고 잠시 수련을 했다. IMF 위기로 어려웠던 시절, 마음을 비우면서 힘든 마음들을 추스릴 수 있었기에 나에게는 마음수련이 큰 버팀목이었던 셈이다.
방금 전 승객들과의 일들을 버리면서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운전을 하다가도 시간이 날 때면 가까운 지역수련원에 들러 집중적으로 버려나갔다.

사실 나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따지는 것을 좋아했다. 한편으론 “왕년에 나도 이런 사람이었는데…” 하는 마음도 컸다. 가끔 승객들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을 때마다 울컥해지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그건 내 열등감의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피해 의식이 있다 보니 작은 말에도 금방 상처받고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자존심, 열등감을 버리다보니, 이미 지나가고 없는 과거에 매여 있다는 게 부질없고 우습게 느껴졌다.

승객을 위한답시고 했던 말들이 왜 화를 불러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승객한테 맞장구친다고 무조건 예예, 했던 것도 속마음을 보니 ‘귀찮으니까 이제 그만하라’는 의미로 건성으로 대답한 것이었다. 한편으로 승객에게 조용히 아무런 대꾸도 안 했던 것도 ‘됐다, 지겹다, 이제 그만해라’ 하면서 무시하고, 무관심했던 마음의 표현이었다.

좁은 택시 안, 이제 확 트인 내 마음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간

그런 마음들을 버려나가자 점차 승객을 대하는 것도 달라졌다. 승객을 만날 때도 마음 없이 그냥 들어주고 그 심정을 헤아리다 보니 울분과 화를 토해내던 승객들의 마음도 점차 풀리는 걸 경험한다. 만취해서 하소연하는 승객을 만나도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러다 보면 처음엔 감정을 주체 못 했던 승객들도 “내가 너무 떠들어서 미안합니다” 하고 하차한다.

마음을 버리고 여유를 갖게 되면서 택시 일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진다. 내 마음의 반영인 듯, 돈과 시간, 고객에 쫓기지 않고도 여유 있게 차를 운전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신기하게 승객들도 더 많이 태우게 된다. 전엔 택시 안이 너무 좁고 갑갑하게 느껴진 나머지 잠잘 때 하루 종일 갇혀 있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이젠 확 트인 내 마음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다. 요즘은 승객 한 분 한 분이 감사하고 내 이웃처럼 소중히 다가온다.

승객들이 있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위급한 환자나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 다리를 다친 학생을 목적지까지 편안히 모셔다 드렸을 때는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보람도 느낀다. 대부분의 택시기사들은 쉬는 날이면 등산을 한다. 스트레스도 풀고 신체 단련을 위해서다. 그것도 좋긴 하지만 나는 마음수련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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