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새댁의 화병 극복기

백영란 / 주부

내가 수련을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두 달쯤 되어서이다. 남들 같으면 한참 달콤할 신혼 시절에 웬 마음수련, 혹시 신랑에게 무슨 문제라도…? 하며 충분히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론 그때 당시 신랑은 학생이었고 나는 혼자서 13평 남짓 되는 미술교습소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특별히 다른 문제는 없었고, 신랑은 나에게 너무나 ‘충성’하는 가정적이고 착한 남편이었다.

세상 천지에 내 마음 둘 곳은 없구나

하지만 결혼 전 친정에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이후 몸이 많이 쇠약해져 젊은 나이임에도 화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머리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은 것처럼 억눌려 살아가야만 했으며 항상 두통과 신경성 위염에 시달렸다.

그때 얻은 별명이 ‘행시’였다. ‘행시’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보다 더 하다는, ‘걸어다니는 시체’라는 뜻이다. 그만큼 끔찍할 정도로 힘든 시간들이었다. 결혼을 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살 적은 신랑과 결혼한 탓인지 시댁에서는 아이에 대한 걱정이 만만치 않았다.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에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정말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매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근심 걱정에 사로잡힌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가져온 종교가 있었고, 종교생활도 열심히 했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하고, 한계가 느껴졌다. 정말 세상 천지에 내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그때 우연히 마음수련에 관한 책을 접하게 되었고 정말 수련을 통해서 그 무거웠던 마음을 떨쳐내고 싶은 마음에 곧바로 수련원을 찾았다.

마음의 평화 찾고 나니, 힘겨웠던 지난 시간들에도 감사해

유난히 어떤 일들에 대해서 마음에 많이 담아두는 편이라 버릴 것도 많았다. 그래서 시간도 더 많이 필요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 때로는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점점 화병은 사라지고, 편안하고 행복해져가고 있었다.

나의 본성을 알게 되니 답답함도 사라지고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항상 모범적으로, 또 바른생활로 살아야만 했던 고단함, 혹시 실수한 일이 있으면 거기에 대한 죄책감으로 날밤을 세워야 했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아이를 갖고 싶은 욕망에서도 너무나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많이 호전되고 있었다.

이젠 정말 돌아갈 곳(마음 둘 곳)이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고 공부를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생각지 않았던 아기도 생겼다. 태교에도 도움이 된다 하여 꾸준히 공부를 했는데 건강한 아들을 세 시간 만에 순산했다. 친구들은 모두들 의아해했다. 병원을 전전했던 내가 어느새 아기 잘 낳는 체질로 바뀌어 둘째 아들도 30분 만에 순산을 한 것이다.

지금은 아들 둘 가진 소위 ‘깡패 엄마’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그 힘겨웠던 시간들에 오히려 감사한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주어졌던 상황들이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단지 나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고 힘든 상황으로 내몰고 있었다.

지금 내 마음은 너무도 크게 달라져 있다. 친구들은 “너 같은 짠순이가 어떻게 그런 공부는 아끼지 않고 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돈보다 더한 귀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전혀 아깝지가 않다”고. 정말 그렇다. ‘죽지 못해 사는 삶’에서 ‘하루하루를 사랑하며 사는 삶’이 되었는데 당연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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