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 제로!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걱정 없어

이진석 / 대학생

최고의 스펙에도 불안초조, 극복한 이진석 군

‘여러 외국어 구사와 전문 지식으로 세계 최고의 다국적 기업에서 CEO로서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벌어들인 돈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이는 나에게는 선택이 아닌 일종의 사명이었다. 일등을 향한 의지가 강했던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목표를 향해 영어와 전공 공부에 임했고, 토익 고득점 획득, 편입 합격, 교환학생 파견 등 소위 말하는 ‘취업 스펙’을 갖추었다. 나는 스스로 진취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나는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목표는 멀어져 가고 집착은 커져만 가고, 고통스러웠던 날들

현실과 이상의 격차 속에서 파생되는 불안, 초조였다. 집착의 마음은 계속해서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고, 그 심리적 고통은 점점 극에 달해져 수업을 한 시간만 들어도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강의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다른 학생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 발표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 등으로 몸도 늘 긴장 상태였고 경직되었다. 수업 후에는 그런 마음으로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무기력해져 버리곤 했다.

달성하려던 목표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이러한 집착을 바꾸겠노라 마음을 먹어 보았지만, 안간힘을 써도 결과는 더 큰 고통으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이 마음으로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고, 결국 나는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교내의 학생상담센터를 찾았고, 6개월간의 상담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는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마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을 제시해주신 분은 의외로 아버지셨다. 책을 통해 마음수련을 알게 되었다며, 권해주신 것이다. 나는 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을 뒤로하고 마음수련을 하러 갔다.

정말 마음이 버려집니까? 몇 차례 확인하고 수련 시작

마음수련은 누가 봐도 납득이 가는 방법인지라 해보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나를 옥죄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 “정말 마음을 버리면 버려지냐”고 몇 차례 물어보기도 했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버려진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마음을 버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이어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버리는 데에만 남보다 여러 날이 걸렸다. 또 수련 후 달라진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끊임없이 의심한 탓에 수련이 굉장히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여러 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수련 시작 2주일이 채 되기 전, 어린 시절 나를 억누른 상대에게 나중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앙갚음을 해주겠노라 다짐했던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을 돕기 위해서 성공하려 한다고 합리화시켰던 그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허황한 목표 세워놓고 발만 구르던 나, 늘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결국은 내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세상에 인정받고 싶어서 그토록 성공에 집착했던 것이었다. ‘항상 남을 위해 산다고 생각해 왔던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었구나.’ 내가 가졌던 완벽주의 또한 나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교묘한 도구임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나를 힘들게 했던 불안, 초조, 집착의 근본 원인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항상 나만의 잣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닌, 내가 바라는 목표를 내세워 그것을 고집해 왔다. 그렇게 효율성에 매여 살고 사소한 결과에도 연연하다 보니, 좁은 마음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현재 조건에서 그냥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를 움직여온 수많은 무의식의 마음들이 버려지면서 차츰 혈색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떤 일이든 몸을 먼저 움직여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요즘은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쉽다. 그만큼 어떤 일이든 잡념과 걱정 없이 하니 재미가 있다. 싫어하던 전공 공부를 수월하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도 보너스처럼 얻은 수확이다. 수업 시간에도 내가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고 넘어가니 훨씬 마음이 편하고 오히려 효율성도 높아졌다. 발표를 할 때도 긴장이 덜 되고 주변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나의 새로운 모습이 경이로울 정도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했던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게 느껴진다.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이 마음이, 현재 내가 취하고 있는 이 행동이 바로 나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미래의 어떤 모습도 내가 아니기에, 더 이상 그 허상에 속아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Share on FacebookTweet about this on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