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행복이 주는 진짜 웃음

이오남 교사.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초등학교

이오남 교사의 마음수련 후기

“선생님, 왜 가짜로 웃어요?”

교실에서 인터폰을 받는 나를 보며 우리 반 남자아이가 한 말이다.

“야, 상냥하게 전화를 받아야지”라고 대꾸는 하였지만 머리통을 한 대 맞은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 앞에서 창피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내 모습이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교직 경력 10년, 나름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몸 바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에게 들려온 말은 바로 ‘내 웃음이 가짜’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순수한 농촌 꼬맹이의 눈에 나의 가식이 보였고 그 말은 나를 산산이 부서뜨리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던 나를 향한 일침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앞에 서며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늘 바쁘고 분주했다. 특히 방학 때면 거의 빠짐없이 새로운 연수를 찾아다녔다.

몇 년씩 전문가와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사물놀이, 그림, 퀼트와 재봉틀, 천연염색을 배우기도 하였다. 한순간 사라져버릴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웃음을 그대로 담고자 카메라 연수도 따라 다녔었다. 생생하게 익혀온 것들은 학급운영에 녹아나게 하였다. 사물놀이를 연주하고, 미술 작품을 완성하고, 천연염색 주머니를 만들고…. 그러한 활동은 학급문집으로 엮어졌고, 사진과 동영상은 비디오테이프와 CD에 담겨 아이들에게 나누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만큼 내 안에서 끊임없이 되뇌게 되는 질문들이 있었다.

 

‘어떻게 이 아이들이 비교되지 않는 자신감을 갖게 할까?’

‘어떻게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삶과 일치시킬 수 있게 해줄까?’

‘스스로 하려는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방법은 없을까?’

‘싫어요, 못해요,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하지만 아이들의 변화가 그리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겪게 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헤매다 지칠 즈음, 나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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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웃는다는 건 뭘까?

나는 왜 가식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었을까?

나는 항상 나에 대해 ‘좋은 사람, 긍정적이고 따스한 사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허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의 내가 아닌 ‘바라는 나’일 뿐인데 그게 ‘현재의 나’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현재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그렇게 내가 만들어놓은 이상적인 나로 보이려고만 하다 보니 그렇게 힘들 수밖에.

당시 내가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아이고, 죽겄네’였다. 힘들어 죽겠고 배불러 죽겠고 어려워 죽겠고 추워 죽겠고 바빠 죽겠고 졸려 죽겠고…. 늘 ‘죽겄네’와 ‘한숨’을 달고 사는 나를 보며 엄마는 뭐라 하셨지만 그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마음이 죽어 있었다. 정말 살기 어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나 스스로 파놓은 ‘나’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나 스스로를 세상에 편하게 열지 못하고 철저하게 숨기느라 쌓아온 마음의 벽들, 그리고 변화와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오직 앞만 보며 끊임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나의 발걸음. 나만의 완벽한 성에 갇힌 나, 사방팔방 철저하게 벽으로 둘러쳐져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했던 나. 이젠 포기하고 싶었다.

바로 그때 만난 것이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였다.

명상을 하며 나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너무나도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삶은 고스란히 나만의 마음세계를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나는, 언제나 나만 옳았기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또 그렇게 하는 나 자신도 미워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내 마음엔 ‘미움’이 많았다. 태어날 때부터 머슴애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나에겐 빨간 원피스도 노란 구두도 안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한번은 꽃무늬가 있고 허리 뒤에 리본을 매는 빨간 원피스를 추석빔으로 엄마가 사주셨는데 입어보니 정말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 옷은 바로 동생에게 주어졌는데 동생에게는 내가 봐도 정말 잘 어울렸다.

그렇게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지기 시작한 ‘미운 나’.

내 몸이 커짐과 동시에 내 마음 안의 ‘미운 나’도 똑같이 커지고 있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잘하려고 노력하였지만 미운 나를 쉽게 벗어던질 수는 없었다.

내 마음속에 ‘미운 나’의 허상을 가지고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실제 버리는 순간 그 ‘미운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렇게 명상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오남 교사의 마음수련 교원직무연수

 

‘미운 나’를 벗어던지다

그렇게 꿈꾸었던 ‘좋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이지 결코 좋은 선생님이 될 수는 없었다. 내 마음에 미움의 싹이 하나라도 있으면 아이들을 미워하게 되고, 내 마음에 짜증의 씨앗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게 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나는 단지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다 될 줄 알았다. 꾹 참고 인내하면 잘될 줄 알았다.

또한 내가 열심히 한다는 생각은 다른 동료들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신의 벽을 쳐가면서 나는 고슴도치처럼 내 곁에 어느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외로웠다. 혼자였다. 그래도 그 길이 내 길이라 위로하며 나는 그렇게 혼자만의 마음세계를 점점 더 공고히 하였다.

하지만 이젠 안다. 마음이 실제라는 것.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마음을 쓰게 되고 그 결과가 그대로 있다는 것.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부정의 마음을 먹으면 부정의 결과가 있고, 긍정의 마음을 먹으면 긍정의 결과가 있기 마련인데, 명상을 하기 전 나는 너무나 부정적이었다. 힘든 마음, 안된다는 마음, 비교하는 마음, 후회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믿지 못하는 마음…. 그런 부정의 마음으로는 내 삶을 끌고 가는 것조차도 힘든데, 어떻게 아이들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너무나 잘못 살아왔던 내 삶을 버리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눈물은 후회와 반성의 눈물이 아니라 가짜인 나에게서 벗어난 것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고, 참된 삶으로의 걸음이라는 기쁨의 눈물이었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망에 찬 감동의 눈물이었다.

 

마음수련은 내가 살아오면서 구축해놓은 나만의 마음세계를 시원하고 통쾌하게 부서뜨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외롭고 어둡고 힘들었던 내 마음세계에서 벗어나 세상과 함께 눈빛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웃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행복한 척하느라 애썼는데 이젠 억지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이 행복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진짜 웃음이.

 


이오남 님은 1973년 충남 홍성에서 6녀 1남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났으며, 1996년 공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교사가 된 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며 많은 노력을 하던 중 마음수련 직무연수를 받게 됩니다. 연수 후 마음수련이 교육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된 님은 지금도 교육 현장에서 마음수련 명상을 적용하며 인성교육 중심의 교육과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 ‘참땀웃음이 가득한 교실’(http://blog.naver.com/skfn37) 블로그를 운영하며,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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