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내 인생’ 한 편의 자작 영화였을 뿐

국지은 / 대학생

‘와 해방이다!’ 대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뛸 듯이 기뻐하며 속으로 외쳤던 말이다. 대학에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처절한 자기 위로 속에 참고 견딘 고교 생활 3년. 대학생은 성인이 되는 첫걸음이니까 분명 삶의 의미와 뜻도 찾고, 문제도 모두 해결될 것 같았다.

기대했던 대학생활도 마음의 문 닫은 채 우울하게 보내

어릴 때부터 조용히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외로움을 유난히 많이 탔다. 성격을 고쳐보기 위해 태권도 학원도 다녀 보고 국토순례도 초등학교 때 완주해냈지만 사람들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에 쉽게 상처받는 성격은 고칠 수 없었다. 어쩌다가 친구와 싸움이라도 하면 그 당시 했던 말 하나하나를 잊지 못하고 고스란히 마음에 담아두어 몇 날 며칠을 혼자 힘들어했다. 그런 기억들이 하나 둘 마음속에 쌓여가자 친구들과 지내기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나에게 조금만 쌀쌀맞게 대해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싶고,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했나 싶어 늘 친구들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그러니 대인관계가 편할 리 없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도 그렇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1학년 때부터 미래에 대한 걱정과 취업 열기에 시달렸고, 학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동기들과도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 어려웠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멋도 내어보고 웃으며 다녔지만 겉도는 답답한 인간관계는 나를 더욱 메말라가게 했다.

결국 꿈을 찾아 입학했던 대학에서도 우울증에 걸려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공부를 하는 이유도 모르고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며 학기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3학년 여름방학 무렵 마음수련을 하러 가셨던 어머니가 그곳에서 전화를 하셨다. “지은아, 엄마 믿고 한번만 해봐.” 취업 준비로 바쁜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이렇게 권유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학원과 아르바이트를 모두 접고 수련원으로 갔다.

스스로 ‘외로움’이라는 제목의 영화 속에 나를 가두다

1과정을 하면서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괴로웠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수련을 할수록 ‘내 삶은 ‘외로움’이라는 제목의 한 편의 영화였다’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셨고, 어머니는 보험회사에 근무하셨다. 동생과 단 둘이서 혹은 혼자서 집을 지킬 때가 많았다.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져 그날따라 동생이 학교에서 늦게 돌아왔다. 어두컴컴한 집에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비가 심하게 내려서 유난히 무서웠지만,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TV를 켜놓고 집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나는 외로운데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오게 되면 그 순간을 늘 떠올리며 나는 원래 외로운 사람이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외로울 거라고, 예전 장면에 내 모습을 끼워 맞추며 늘 우울해했다.

우울함이라는 영화 필름 버리니, 세상은 감사 자체

수련을 하면서 나는 내가 지금 이 순간의 진짜 삶 속에 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저 내가 나 중심적으로 ‘나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설정해놓은 우울한 영화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는 상반된 또 다른 장면들도 떠올랐다. 주말에 여행을 가며 행복했던 가족의 모습이나, 친구들과 즐거웠던 장면이 그것이다.
수련하기 전에는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그렇게 부모님, 동생과 내 친구들은 늘 나와 함께 있었는데 우울함이라는 타이틀을 단 내 영화 속에 나를 가둬놓고는, 그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를 모른 채 나 혼자 세상과 인연을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감사 전화를 했다. 과거의 기억 속에 살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게 되자 그렇게 다니기 싫던 학교도, 열정과 목표가 있는 즐거운 장소가 되었고, 처음으로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누가 알았을까. 자기중심의 마음속 영화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냥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우울함이라는 영화 필름을 버리니, 세상은 감사함 자체라는 것을…. 마음수련은 내 마음이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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