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아들아, 아버지는 그러는 건 줄 알았다”

임기춘 / 자영업

우리 가족은 3대가 함께 산다. 나와 아내,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두 손자와 앞으로 태어날 셋째 손자 녀석까지. 나는 예전에 밥상이 차려졌는데 수저가 없으면, 밥을 먹으라 하는 거냐 말라는 거냐 하며 난리를 칠 정도로 권위주의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아직도 그런 모습이었다면 아이들도 결코 같이 살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처럼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버지와 똑같았던 나

나의 아버지는 전북 완주의 소위 ‘뼈대 있는 가문’의 5대 종손이었다. 그리고 나는 7남매의 장남, 6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격이 아주 급하고 불같은 분이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밥상을 엎어버리곤 했다. 자식들에게도 칭찬 한마디 하시는 법이 없었다. 엄하게 꾸지람을 들으며 늘 숨죽이며 지냈다. 중2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했는데 그 이후로 나는 장남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까지 지고 살았다.

24세에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여러 장사를 했다. 결혼한 이듬해 아들을 낳았는데,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잘못된 것만 지적해서 야단을 쳤다. 심지어 발가벗겨서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 미술에 재능이 있어서 미술 공부를 그토록 하고 싶어했는데도 그 당시 내 기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절대로 안 된다고만 했다.
아버지처럼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나는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들은 점점 삐뚤어지더니 고등학교 가서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않고 고3 때는 아예 집을 나가버리기도 했다. 해줄 만큼 다 해줬는데 싶어 분통이 터졌다.

‘내가 보고 배운 게 그거여서… 미안하다’ 아들에게 정식으로 사과

마음수련을 하고 나서야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수련하면서 아들과 아버지에게 가장 크게 참회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너무 고생을 해서 차라리 부모가 없으면 좋겠다고 아버지를 원망했고, 그 마음을 품은 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수련을 하면서 돌아보니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자존심과 살아온 환경이 비로소 마음에 다가왔다.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아픔과 슬픔을 알 수 있었다. 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잘못 만난 탓에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도 못 하고 너무 많은 방황을 했구나 싶고, 따듯한 말 한마디 못 해주고 혹독하게 야단을 쳤던 기억을 떠올렸을 때 가슴이 저미도록 아팠다.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했다. “내가 보고 배우고 산 게 그거여서 아빠 노릇은 그렇게 하는 건 줄 알았다, 너에게 잘못한 것이 너무 많다, 미안하다”고. 아들과 함께 많이 울었다. 나는 점차 말투도 부드러워지고 가족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게 됐다. 가장이 변하니 집안의 분위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3대가 함께 즐겁게 사는 비결? 온 가족이 마음수련하는 것

아들은 6년간 연애를 하다가 2004년에 결혼을 했다. 며느리도 마음수련을 했다. 아들 내외가 먼저 같이 살자고 했다. 함께 살면서 아내가 며느리에 대한 불만이나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내는 늘 “우리가 다 마음수련을 해서 온 가족이 같이 살 수 있나 보다”라고 한다. 마음 씀씀이가 깊은 며느리 역시 “마음공부를 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내나 아들, 며느리 모두 집안일 하랴, 운영하는 PC방 돌보랴,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청소도 하고, 빨래도 개고, 밥도 알아서 챙겨 먹는다. 한날은 아들 내외가 자는 모습이 안쓰러워 밥상을 차려놓고 깨웠다.
며느리가 나중에 “내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고 해서 함께 웃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놀라운 변화긴 하다. 나는 손주들을 많이 안아준다. 어떤 경우라도 나무라지 말고 이해를 시키라고 한다. 아이들 키울 때 사랑을 많이 주고 칭찬을 많이 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가족의 힘이 무엇인지,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짐만 지고 살아왔는데, 그 짐을 다 벗은 지금,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

Share on FacebookTweet about this on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