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체중의 열등감 벗어나자 자유로워진 식생활

김철기 / 자영업

30대 초반, 나에게는 정신적 멘토라고 여겼던 분이 계셨다. 그분은 요가, 명상에 일가견이 있었고 외모에서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하루는 그분께서 나에게 채식을 해보라며 권하셨다. 그분의 정신세계를 닮고 싶은 마음에 나는 곧바로 채식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육고기는 물론 생선이나 계란도 먹지 않았다. 아침은 야채에 된장, 점심은 도시락을 싸다녔다.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명체를 죽이지 않으니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열등감 포장하기 위해 했던 채식주의와 금주의 굴레

이론적으로도 내 행동의 당위성을 찾고 싶어 책도 많이 읽었다. 술도 자연스럽게 끊었다. 친구들이 ‘혼자서 천년만년 살 거냐’ 핀잔도 줬지만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단순히 먹고사는 즐거움만 추구하는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나는 내 입맛 하나를 위해서 사는 동물이 아님을 스스로 인지시키며 나와의 약속은 십 년이 넘게 계속 지켜졌다.
그러던 2010년 호기심에 시작한 마음수련은 내가 생각했던 음식과 마음의 평화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는 과체중이라 열등감이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등산, 헬스, 스쿠버 등 안 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내 인생을 돌아보며 채식과 금주를 포함한 이 모든 것들이 열등감을 포장하기 위한 것임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한 참회부터 되어야 진정한 마음의 평화도 찾아와

‘너네와는 달라. 난 정신세계를 추구해.’ 마음에 우월함을 채우며 살아온 세월이 십 년이 넘어가다 보니 고집과 틀이 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절대 피해 준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가족 식사를 즐겁게 해본 기억도 없었다. 아빠와의 외식이라는 애들의 사소한 즐거움을 뺏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아빠였음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진리는 무엇을 먹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도 절실히 깨달았다. 오히려 채식한다고 티 내며 나와 남을 구분 짓고 사는 동안 내 삶은 진리와 멀어져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채식도, 내 삶에서 보고 배운 기준과 틀도, 그걸 가진 나도 다 버렸다. 그 후론 몇 달 사이에 먹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시비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나 자신부터 자유로워졌기에 가능해진 편안함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마음도 진실로 이해하게 되었다.

상대가 무엇을 먹든,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그것을 시비하고 구분 짓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이 잘못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도 알게 되니 이 몸뚱이만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저절로 들었다. 어떤 높은 이상과 정신세계를 추구하기 전에, 먼저 나부터 참회할 때, 진정한 마음의 평화도 찾아옴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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