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남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문민애 / 동시통역사

얼떨결에 후배를 따라간 런던의 마음수련 세미나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마음 닦기. 후배와 주위 사람들의 끊임없는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열듬감과 우월감에 가려 한번도 세상을 똑바로 본 적이 없던 나

어렸을 적부터 비만이었던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놀림도 많이 받았고, 원하지 않는 충고도 많이 받아왔다. 친척들이 놀러오면 첫 인사가 “얘, 너 살 좀 빼야겠다”였고, 길을 지나갈 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손가락질을 하고 비웃는다고 느껴져 처참했다.

놀림과 충고를 들을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더 밝게 웃어야 했고, 그러는 동안 내 가슴은 상처로 얼룩졌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항상 주위의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했고, 성격은 점점 수줍어지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는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겠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수련을 하다 보니 나는 한 번도 세상을 똑바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 나를 칭찬해주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나를 놀리는 말이라고 추측하면서 내 열등감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수많은 딱지를 붙여놓고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신 없는 나’ ‘못난 나’ ‘잘난 나’ ‘끈기 없는 나’ ‘잘난 척하는 나’ ‘예쁜 척하는 나’ 이런 모든 ‘나’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구속하고 있었다.

나를 구속하는 이런 마음들을 버리고 나니, 사람들의 편견과 놀림이 사실은 내 마음속에 있는 편견과 놀림 때문이었고, 오히려 내가 사람들의 말을 왜곡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받았던 관심과 사랑을 밀어내고 거부한 것이 오히려 나였다니…. 그 큰 열등감이라는 산을 넘어 2과정을 마치고 났을 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무런 편견과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되다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날아갈듯 가벼웠고 사는 것이 이렇게 신나는 것인 줄 처음 알았다. 지금 나는 영국 내무부, 법원, 경찰 소속의 동시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항상 많은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는 직업이다. 통역사가 없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으므로 서로가 통역사의 말을 기다린다.

처음 대법원에서 근무할 때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전화 연락만 받고 법원에 나타나자 그 법정 안은 각종 신문사의 기자들뿐만 아니라 정부 고위직 관계자들로 꽉 차 있었다. 수상관저 보안에 관한 사건이었고, 이렇게 큰 사안을 맡아보기는 처음이었다.

한국인 남자 피고를 위해 통역을 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말과 판사, 검찰 쪽, 변호인 쪽의 말들이 나를 통해 나가는 것이었기에 관심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통역할 때의 그 떨림, 수줍음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냥 집으로 도망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나에게 집중된 기대들은 자신감 없는 나를 시험대에 올려놓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나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도망갈 수도 무기력한 나에게 질 수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만 생각이 집중될 때는 다른 사람의 말조차 들을 수 없지만 내 마음이 없어지고 큰마음인 우주의 마음이 되었을 때는 주변의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기에 업무 처리 능력이 극대화될 수 있었다.

그 재판은 몇 달에 걸쳐 진행이 되었고 마지막 재판이 끝나고 그가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아무런 편견과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이제서야 조금씩, 조금씩 나 자신을 사랑하는, 또 남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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