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공포증, 마음의 중력을 이겨내다

이덕주 /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대전시 유성구 어은동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이덕주 교수

몇 년 전, KAIST 학생과 교수의 자살이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심각성을 인지한 학교와 학생들은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마침 명상을 하고 있던 내가 명상 과목을 가르치게 되었다.

마음빼기 명상 후 학생들은 자기 마음을 돌아보고 빼니 어렸을 때의 나쁜 일 뿐 아니라 좋은 일도 스트레스의 원인이었음을 알았고, 그 동안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됨으로써 인생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하였다.

이후 코세라(Coursera; 세계적인 공개 인터넷 강의)로도 명상 강의는 이어졌다. 미국에서도 명상 강의를 듣고 마음을 버리는데 몸도 가벼워졌다고 신기하다면서 메일을 보내왔다. 2018년은 ‘명상, 내 인생의 목표를 이루는 방법’으로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중학교에서는 자유학기제로, 대학에서는 교양과목으로 명상을 통한 인성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KAIST에서도 명상과학연구소가 설립되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명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명상을 통해, 쌓인 마음들을 빼내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시대다. 한 사람으로서, 또한 과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폐쇄공포, 명상으로 원인 찾아내고 버려

내가 마음수련을 시작한 것은, 언제나 잘나갈 것만 같던 내 인생이 긴 추락에 직면했을 때였다.

서울대 항공과 졸업 후,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사(NASA)에서 3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한 뒤 1988년 한국의 카이스트 교수가 되었을 때까지, 내 인생은 계속 상승세였다. 하지만 2년 뒤 부친이 작고한 후부터는 추락의 길이었다.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학교 일과 병행하느라 몸은 녹초가 되고, 사업은 점점 어려워져 결국은 집안도 가정도 힘들어지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이 오기 바로 직전 폐쇄공포 증세가 나타났다.

러시아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비행기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영화 속 장면이 나라고 느껴지더니 갑자기 비행기 안이 굉장히 좁아지면서 숨이 차고, 식은땀도 나고 견딜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폐쇄공포증이라는 걸 알았다. 그 뒤부터는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누가 지하 탄광 얘기만 해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옮겨야 했었다. 비행을 연구하고, 해외 출장도 많은 항공우주학과 교수에게 폐쇄공포라니. 당황스럽고 힘들었다.

정신과 약도 먹고 나름대로 벗어나려고 여러 시도도 하였다.

그 동안 내 생활이 뭔가 잘못됐나 싶어 고치려 했으나 생각과 행동은 그대로였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회사는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경제 상태도 밑바닥일 때 우연히 마음수련에 관한 책을 보게 되었다.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이덕주 교수의 폐쇄공포증 이야기

2001년 여름, 마음수련 시작 첫날이었다. 나의 삶을 돌아보는데 폐쇄공포증의 원인이 사진처럼 떠올랐다.

대여섯 살 무렵 동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시멘트로 된 개집에 친구 3명과 함께 들어가는 장면, 들어갈 땐 잘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발들이 꼬여 못 나와 갇혀 있게 되었을 때의 공포….

바로 이 기억들이 폐쇄공포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잠재된 기억이 평소 건강할 때는 괜찮았다가 마음이 힘들어지고 의식이 황폐해지자 무의식이 올라오면서 증세를 일으킨 것이었다. 원인을 알았으니 버리면 될 일, 나는 마음수련 방법에 따라 3시간 정도 미친 듯이 버렸다. 그러자 한순간 그 장면이 사라졌고, 나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사라지며 완전히 편안한 순간에 도달했다. 10년 동안 고생한 것이 이렇게 사라지다니, 이 명상의 탁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단계 단계를 확실하게 해내갔지만 열심히 하다가도 불쑥불쑥 나는 수련을 잘 못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리고 그런 열등감 또한 나의 살아온 삶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과학자 입장에서 봐도 정확하고 획기적인 방법

나는 4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힘들지 않게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친구들은 더 잘 살고 유명한 집안인 것을 느끼면서, 내 환경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남들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당대 최고 좋은 학교에 다닐 때도 역시 나는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실리콘밸리를 이룩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석박사를 하고 NASA에서도 근무하고, 한국의 최고 학부인 KAIST 교수가 되었음에도 나는 늘 남들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의 뿌리가 마음수련을 하는 데에도 그대로 드러났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폐쇄공포증을 없앤 전력이 있지 않는가. 열등감 또한 없앨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검증을 중요시 여기는 과학자 입장에서 봐도 이 명상은 확실하고 체계적인 방법이었다. 살면서 찍어 놓은 사진들이 마음이고, 그 사진들이 관념과 관습을 만들어 오늘의 나를 만든다. 그 사진, 즉 마음을 버리면 원래의 순수했던 참마음으로 살게 된다. 원래의 참마음이란 산소, 수소도 생기기 이전의 순수 우주 허공 자체라는 마음수련의 원리와 이치에도 전적으로 동감했다.

만물이 그렇듯 사람도 허공에서 왔기 때문에 원래 우주처럼 순수해야 하는데, 사람은 자기가 찍어 놓은 마음사진들이 많아서 기분 나쁘다, 슬프다, 힘이 빠진다, 이렇다 저렇다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이다.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이덕주 박사의 수업 모습

비행기가 중력을 이기고 날 듯 마음의 중력 이겨내고 자유를 찾다

수련에 집중하며 열등감을 포함해 그 동안 쌓아둔 마음들을 버려갔다. 뭔가 보여주겠다는 마음, 사람들을 내 뜻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 성과들을 내세우려는 마음, 술, 빚, 그리고 인생의 상처…. 철저하게 버려 나갈수록 생활이 바뀌어갔다.

먼저 술 담배를 끊게 되고 약속 시간을 잘 지키게 됐다. 예전엔 일에 끌려다니다 보니 시간에 맞춰 잘 나가질 못했는데, 수련 후에는 집중력이 높아져서인지, 일할 때도 끊고 맺는 게 분명해진 것이다. 또 한때는 ‘대박’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씩 해나가면서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니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도 없어지고 여유도 생겨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마음과 습을 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 하나 개인적으로 기쁜 일은 명상을 하고 몇 년 후 미국 ‘보잉’사가 온 가족을 초대한 것이다. 내 논문을 본 보잉사 관계자가 원인을 모르겠는 자사 항공기 제트엔진의 소음 진단을 부탁해, 3개월간 체류하며 원인을 파악해 주었다. 마음을 비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니까 사고가 자유로워지고 지혜로워져 좋은 논문들을 발표하게 된 결과였던 것 같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도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해준다. ‘비행기가 중력을 이겨 자유롭게 날듯이 마음의 중력을 이겨 자유를 느껴보기 바란다’고. 앞으로 ‘마음’과 ‘비행기 연구’를 접목시켜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동료들이 그러다 철학교수 되는 거 아니냐고 놀리지만 말이다. 움직이는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니, 무엇을 해도 좋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덕주 님은 1954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 항공과 졸업, 미국 스탠포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나사(NASA) 연구원 근무 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마음의 짐으로 힘들었던 시절 명상을 통해 폐쇄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님은, 한국음향학회 저널 영문 편집장, 한국인 최초로 미국헬리콥터학회 저널의 부편집장, 미국헬리콥터학회 부회장을 맡았으며, 공력음향학과 공기역학 관련 30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하며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전인교육학회 회장직을 겸하며 인성교육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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