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벽증 환자, 평범한 사람이 되다

김민섭 / 대학생

큰 도로 옆을 걸을 때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는 앉지 않는다. 버스 손잡이를 잡지 않는다. 화장실 손잡이는 손을 휴지로 감싸고 잡는다. 탄산음료를 절대 마시지 않는다. 과자와 햄을 먹지 않는다. 야채는 하루에 한 그릇 이상, 각종 미네랄, 무기질, 비타민,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세상은 오염됐어’ 강박증 되어버린 위생 관념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저러한 규칙을 마음에 정해 놓았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릴적부터 세상은 ‘오염’되었고 ‘사람들은 너무 위생 관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나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로 했다.

그래서 좀 불편해도 저 규칙들을 꼬박꼬박 지키며 살았다. 외출했다가 집에 오면 겉옷과 장갑은 방에 두지 않고 베란다에 따로 보관했다. 내 방만큼은 최대한 깨끗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불평했지만 나는 꿋꿋이 계속했다. 학교에서도 그랬다. 사람들은 원래 이기적이니까 이런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보다도 내 몸 돌보기가 1순위라는 생각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내 뜻대로 안되니까 세상을 통째로 부정해

다만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특이한 사람으로 찍힐까 봐 공감하는 척, 착한 척 거짓말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햄버거를 먹어야 했던 날에는 꾸역꾸역 햄버거를 먹고 집에 와서는 야채를 두 배로 먹기도 했다.

일상이 불만투성이였고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그게 옳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20살 때 누나가 마음수련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1주일 쉬다 오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논산에 있는 메인센터로 갔다. 그런데 그 1주일이 나만을 위해서 살아온 20년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게 해주었다.

내 몸뚱이 하나 어떻게 될까 봐 조심하고 잘되려고 애쓰며 살았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던 힘든 삶이었다.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되니까 세상을 부정하고 작은 것도 더 불결하게, 부당하게 느꼈던 거였다.
실제 세상과 다른 나만의 세상 속에 들어앉아서 더럽다 깨끗하다 맞다 틀렸다 하는 기준을 정하고 세상을 시비분별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인데, 그러면서도 내가 제일 소중하다고 여기며 살았던 게 참 부끄러웠다.

결벽증 사라지고 자연스러워진 일상생활

그런 마음들을 1주일 내내 버렸다. 그러자 1주일 만에 남보다 잘돼보려고 발버둥쳤던 나는 없고 무한한 우주가 나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정말 자유로웠고 가짜인 마음세계를 끝까지 다 버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수련 과정을 어느 정도 끝내자 어느새 세상을 보는 눈이 확 달라져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먹는 것, 입는 것도,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하다. 콜라든 햄버거든 상황에 따라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한다. 옷도 자유롭게 입고 지하철에서, 큰 도로에서 말도 잘한다. 물론 기본적인 청결함은 유지한다.^^;

뭐 하나 잘하는 건 없으면서 결벽증 환자였던 내가, 이제 그런 구속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워진 것에 감사하다. 그동안 나 때문에 오랫동안 불편했을 주위의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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