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진짜 의사 되는 길

신덕일 / 한의사

서울 영등포시장은 재래시장답게 정겨운 골목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채소고방과 건어물 골목, 포장마차, 어묵 냄새 구수한 튀김집, 만물잡화점…. 활기로 가득한 시장 한켠에 한의원 하나가 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할머니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인 젊은 한의사 신덕일(34)씨. 서글서글한 외모, 듬직한 체구에 실력 좋고 마음까지 ‘반듯해’ 어르신들 사이에서 손주사윗감 1위로 올라 있다는 그다. 한때는 “세상이 다 스트레스 덩어리처럼 느껴졌다”는 그가 마음 따듯한 한의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평화당한의원’의 행복한 한의사 신덕일씨

“원장님, 고구마가 아주 맛난디, 꼬~옥 챙겨 드셔요.” 한의원 탁자 위엔 언제나 검은 ‘비닐봉다리’가 놓여 있다. 고구마, 옥수수에서부터 붕어빵, 군밤, 음료수 심지어 김치, 젓갈 같은 찬거리까지. 총각 한의사 끼니 거를까 싶어 시장통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가져다주시는 것들이다. 한눈에도 어르신들이 그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 수 있다.

“제가 아들 같고 손주 같다면서 손잡는 걸 좋아하세요. 추운데서 장사하시느라 거칠어진 손을 잡다 보면 부모님 생각이 나서 뭉클할 때가 많아요. 힘들게 살아오신 얘길 들으면 꼭 우리 부모님 얘기 같구요.”
대개 홀로 지내시는 분들이 많으니 자연히 정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병도 그런 추운 마음에서 초래된 것일 수도 있다. 그가 진료하고 한약 짓고 침 놓아드리는 것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따듯하게 손잡아 드리거나, 힘들게 살아오신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것이다.

“훌륭한 의사란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제 자신이 마음자세가 안 돼 있으니 당연했지요.” 그는 자신이 “정말 나밖에 모르는 놈”이었다는 걸, 알게 해준 것은 마음수련이었다고 말한다.

동생들과 겸상도 안 하던 ‘귀공자’의 고난

신덕일씨는 충북 청원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쁘셨고 애지중지 외조부모님 품에서 자랐다. 버스도 없던 시절, 초등학교를 가려면 큰 산 두 개를 넘어야만 했는데 여덟 살짜리 꼬마 덕일은 새벽 6시에 일어나 가방을 메고 혼자 산을 넘어 학교를 잘도 다녔다. 어르신들이 보기에도 기특했던 이 장손은 집안의 기대와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늘 들었던 터라, 당연히 농번기 농사일 돕기도 동생들의 몫일 뿐이었다.

“얼마나 버르장머리가 없었는지 동생들과 겸상하는 걸 싫어했어요. 독상만 받았죠. 나는 너무 올바르고 잘났는데 동생들은 왜 말썽만 피우는지 못마땅했고 무시를 많이 했어요. 오죽하면 동생들이 제가 군대 간다니까 되게 기뻐했겠어요. 그래도 그땐 나를 몰랐어요.” 장남으로서 집안을 생각해 한의대를 갔고, 졸업 후 청주에서 한의원을 개원하면서 그는 정말 훌륭한 의사가 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회의가 들었다 한다. 겉으론 환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매일 아프다는 소리에 짜증이 나고, 마음속으론 ‘그러니까 아프지’하는 분별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집에서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셨던 부모님이셨지만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걸렸다. 투박한 말투와 무뚝뚝한 행동은 촌스럽고 무지하게 비쳐졌다. 부모님 말씀에 “뭘 안다고 그러세요?” 하며 무시하기 일쑤였던 것. 게다가 결혼까지 생각한 여자친구와도 헤어지자 괴로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주위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대답은 같았다. “뭐가 부족해서 고민하고 그래.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운동하면 편안해질까 수영, 등산도 하고 술도 마셔봤지만, 몸은 더 피곤해지고 해결은 안 됐다. 그제서야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어머니 밥상 앞에서 “감사합니다”

한의사 후배의 권유로 마음수련을 시작했다. 지역센터에서 공부한 지 며칠 지나서였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 감사합니다”란 말을 하고는 깜짝 놀랐다 한다. “부끄럽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때 이 공부는 되는 거구나 알았죠.”

망설일 것이 없었다. 한의원을 친구에게 맡기고는 몇 개월 동안 논산의 메인센터로 아예 들어갔다. 철없던 어린 시절, 환자에 대한 짜증, 부모님에 대한 불만, 잘난 척하던 나도 참된 내가 아닌 허상이었고, 그 허된 마음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것은 허상의 사진들이었지 본래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버려나갔다. 수련하는 동안 어깨가 짓눌린 것처럼 아파왔다. 어깨가 무겁다는 말을 실감했다. 짐을 짊어지고 있는 나,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나를 버리자 어깨통증도 사라졌다. 몸, 마음이 하나란 걸 깨치는 순간이었다.

“한의학에서는 감정 변화를 칠정(七情)으로 표현해요. 그게 몸을 상하게 하는데, 침과 약으로 어느 정도 좋아지게 할 수는 있어요. 실제로 화날 때 차가운 성질의 약물을 넣으면 화를 누르니까 잠시 기분 전환은 돼요. 하지만 뿌리가 되는 마음을 빼내지 못하면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거든요. 마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죠.”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풀리지 않던 의문도 수련을 하며 저절로 해소되었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 있는 선배의 한의원을 인수하며 영등포시장에 자리를 잡는다.

마음수련은 ‘사람 만드는’ 공부

“환자를 대하는 게 바뀌었어요. 사람을 살린다는 것보다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하니까 마음도 낮아지고 많이 편안해졌죠. 전에는 내가 아는 지식을 환자한테 끼워 맞추려니까 스트레스가 많았거든요. 지금은 먼저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요. 그러면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는 환자들이 오면 증상 외에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꼭 묻는다. 대개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으로 가장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상담할 때도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그냥 들어준다. 그렇게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고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마음의 뿌리는 마음을 닦아야만 버릴 수 있는 것. 그래서 그는 한의사든 양의사든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듣는 것도 내 마음이 좁을 땐 안되지요.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거든요. 그런데 마음 없이 그냥 들으니 상대가 무지 편안해합니다.”

“나를 벗어나 보니 세상에 감사하게 됐다”는 그가 작년부터 새로 시작한 일이 하나 있다. 마음수련을 한 의사들의 의료봉사 동아리에 참여해 농촌 의료봉사 활동을 하는 것. 하지만 배우는 게 오히려 더 많단다.
그래서 그는 마음수련을 ‘사람 만드는 공부’라고 표현한다. “서로 나누면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주거든요. 환자들을 대하다 보면 이제야 의사가 된 거 같아요.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진짜 의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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