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버린다, 관념과 관습을 바꾼다. 놀라운 마음수련 명상

박준규 / 치과의사

내가 40이라는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특별한 질환이 없는데도 항상 피곤하고, 짜증스럽기만 할 뿐 의욕이 없고 하루하루를 버티어 나간다는 느낌이었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구나’라는 한숨 속에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억지로 웃음을 짓고 친절을 가장하면서도 내 마음이 점점 피폐해지고 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변화의 빛을 찾기 시작한 것은 그 벼랑 끝에서였다.

이뤄놓은 것들을 지켜내겠다는 욕심과 집착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아내에게 매일 듣던 말은 “피곤해 보인다”는 소리였다. 병원에서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이루어놓은 것들을 지키려는 처절함이었다. 칭찬에는 익숙하지만 비난받는 것은 너무나도 싫어하는, 내가 그런 상태였다.
특히 치과 치료 자체가 몸을 다루다 보니 늘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환자가 치료에 대해 만족할지 결과가 좋을지 연연하고 걱정이 많았다. 어떤 치료를 해도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면 책임감 있어 보이지만, 그 뿌리엔 누구로부터도 욕먹기 싫은 마음이 깔려 있었다.

나야말로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이었다. 그렇기에 퇴근할 때면 늘 탈진한 상태였고, 술로 달래든지 아니면 집에 가서 잠자기 바빴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머리가 아픈 월요병이라는 것도 생겼다. 하루 종일 환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집에 와서는 말하기도 귀찮았다. 아이들에게는 짜증 내고 화내는 모습이나 텔레비전 보거나 잠자는 모습만 보였다. 가끔씩 하던 외식과 여행도 의무적인 것일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가족 속에서 소외돼가는 내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함께 있으면 어색하고 긴장감이 돌다가도 내가 방에 들어가면 웃는 소리가 들리고, 심지어 내가 자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외식하고 오는 때가 잦아졌다. 점점 아내, 아이들과의 벽이 두터워지고 있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소유물로만 생각했던 가족

아내도 처음에는 나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화만 내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포기하는 듯했다. 결정적으로 한계 상황을 절감한 것은 자살 충동이었다. 어느 겨울,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 갔는데 그대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더니, 그 후에도 높은 곳에 올라가면 충동을 느꼈다. 내가 죽으면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부모님이 충격 받으시겠지,라며 번뇌하던 그때는 참 힘든 시간이었다. 소외감이 극에 달했을 때쯤 마음수련을 알게 되었다.

반신반의하면서 여름휴가 기간에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내내 정말 달게 잠을 잤다. 그렇게 편안하게 잠을 자본 것이 얼마 만인지…. 수련을 하며 가장 처음 깨달은 것은 ‘정말 나는 이기적인 놈이구나’라는 것이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나만 위해서 살았지, 어느 누군가를 위해 살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돈, 명예, 가족… 그토록 힘들었던 것은 내가 가진 것들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던 집착과 욕심 때문이었다.

집은 힘들게 돈을 벌어왔으니 편하게 쉬는 곳으로, 직장은 단지 돈을 버는 장소로만 생각해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가정을 ‘내가 함께하는 집’이 아니라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소유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일할 때의 완벽주의 습관도 나의 만족감과 자존심을 지키려고 발버둥친 것이었다.

관념 관습을 버리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

이제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할 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를 찾아온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픈 내 형제를 대하듯 환자들과 만날 수 있었고, 치료를 해준다기보다 정보를 나누고, 보살펴줄 만큼 가까워졌다. 서로 챙겨주고 나눠주는 또 하나의 가족이니 스트레스 받고,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예전에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불만족했다면, 지금은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하는 마음부터 생긴다. 그러니 예전 같으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나를 일깨워주는 선물로 다가온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시 앉아서 기도를 한다. ‘오늘도 나를 위한 하루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도구가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아내도 마음수련 명상을 하게 되면서 부부 사이는 오누이처럼 편안해졌다.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생각했던 나였다. 절대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처절하게 수련으로 버려나갔다. 관념, 관습을 버리게 된 것은 가장 큰 변화였다.

전에는 사람의 행동에 대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줄도 모르면서 내 알량한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멋대로 판단하고 상처를 주었었다. 가족들이 나와 함께 있을 때 조용했던 것도, 나를 빼놓고 외식하러 간 것도, 내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가족의 사랑이었음을 보지 못했다. 나를 소외시킨다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는 상처받고 괴로워하지 않았던가. 내 관념을 빼고 모든 상황을 볼 수 있다면 괴로워할 이유도, 상대에게 상처를 줄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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