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시작되었다

김미남 / 회사원

서른, 잔치는 끝났다. 어느 시인이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 이토록 짧은 한 줄로 정의를 해 놓았다. 누구나가 그런 마음은 아니겠지만 내 나이 서른 즈음에 나 또한 이 한 줄의 글에 공감하면서 슬럼프에 빠져 힘들어했다. 그토록 믿었던 인연에게 적으면 적고 크다면 큰 나의 재산 일부를 손해 보기도 하고, 몇 년째 병원을 오가며 치료 중이시던 아버지의 병세도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꽃샘바람 가득한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기에 애써 참으며 견디겠지만 아버지와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프고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7남매 중 막내딸인 나는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하지만 한 살 터울의 오빠를 아버지가 더 좋아한다는 나만의 착각으로 아버지를 미워하고 반항하며 사춘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20대에 부모님을 떠나 살면서 그 어린 시절 나의 오해가 미안하고 죄송해서 더 잘해드리고 효도하리라 다짐했었는데 그런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던 것이다. 병상에서 혼자 남은 미혼의 막내딸을 보며 당신 생전에 막내사위를 보여줄 수 있냐고 묻고 또 물으시던 아버지. 나는 시집 못 간 불효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의 성화에 여러 번 만남을 가졌지만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내 마음엔 어느 누구도 들어오질 않았다. 아버질 위해서라도 결혼을 해야겠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내 인생을 위한 건데 이렇게 불안감을 안고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꽃샘바람 가득한 어느 날에 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힘든 기억, 모두 사라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 했던가. 슬픔은 남은 자의 몫이라 했던가. 둥그런 아버지의 봉분 앞에서 땅을 치며 가슴을 뜯으며 통곡했다. 아버지 가슴에 한을 남긴 채 떠나보낸 이 불효녀의 가슴에도 죄책감과 한스러움의 못이 박혀 버렸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업무에 집중할 수 없어 직장도 그만두고 싶었고 너무나 힘이 들어 절이나 교회에 가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온 세상 피어나는 꽃도 아름답지 않았던 그 봄날, 삶에 대한 회의와 공허함, 우울함으로 힘들어하던 차에 마음수련 얘기를 듣게 되었다. 정말 마음을 버릴 수 있을까? 힘든 기억들이 모두 사라질까?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수련을 시작했다. 살아왔던 삶의 기억들을 떠올려 버리기 시작했다.

혼자 오해하고 살았던 속 좁은 나 버리니, 모든 상황 이해돼

어린 시절 나보다 오빠를 더 좋아한다고 착각한 그 사진 한 조각으로 인해 아버지를 미워하고 오빠들을 미워하고 나에게 다가오던 이성에게조차 마음을 열지 못하던 나의 모습을 버렸다. 가족에 대한 원망이 많았던 나는 오빠 부부를 시기질투하며 섭섭한 감정을 마음속에 묻어 두곤 했었는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가 찍어놓은 사진에 비추어 착각하고 오해하며 혼자 짓고 부수었던 것이었다. 처음엔 가라앉혀 놨던 슬픈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려니 힘들고 괴로웠지만 점차 그 기억된 사진들이 버려지니, 참 편안하고 좋았다.

엄마, 오빠, 언니들 입장이 되어볼 수 있었고,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이해도 되었다. 혼자서 오해하고 살았던 속 좁은 나 자신이 미안할 뿐이었다. 전보다 더 가족들과의 관계가 편안해졌고 철없는 막내를 늘 말없이 지켜봐준 가족들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그 후 직장생활에서도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업무가 많아도, 동료들과 서로 안 맞아 짜증이 밀려와도, 그전과는 다르게 쉽게 수용하고 그 감정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상대 입장에서 이해하니 자연스럽게 미안하다고 먼저 말할 수 있게 되고 서로의 감정에 앙금이 남지 않는 것이다.

나 속에 갇혀 세상을 바로 볼 줄 몰랐던 내가, 특히 아버지에 대한 오해의 ‘사진’ 때문에 진심으로 다가오는 이성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상대의 참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마음수련을 못 만났다면 이렇게 늘 감사한 마음, 웃음 가득한 얼굴로 보내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어느덧 이제 서른 중반. 예전보다 웃음이 많아져 눈가에 잔주름은 자글자글하지만 그 주름조차도 감사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서른,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매일매일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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